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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경향포럼]“부작용만 보고 최저임금 올리지 말자? 바보 같은 소리”
이름   경향포럼    |    작성일   2018-06-11 09:43:03    |    조회수   238

ㆍ앵거스 디턴 인터뷰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불평등 문제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준 기자

 

불평등 해소책 효과 ‘양면적’
정책 시행 실증적 조사 필요
 


진정한 웰빙 국가 만들려면
운전자가 차 계기판 보듯
성장 외 다양한 지표 살펴야


“단순히 ‘누군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니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바보 같은 소리다.”


2015년 소비와 빈곤, 복지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교수(73)는 지난달 18일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최저임금 정책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는 만큼 이 둘을 아우르는 충분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 한국에서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정책 시행 효과를 계속 추적하는 “실증적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4일 헝가리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차용해서 최근 국내 최저임금 효과 논란에 불을 댕긴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가 나오기 17일 전에 이뤄졌다.


슈퍼 부자들로의 과도한 부의 집중과 관련해서는 “슈퍼 부자들이 생겨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들이 정치를 좌우하거나 보통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더 큰 부를 쌓기 시작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모든 국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질과 웰빙(well-being)의 개념을 강조해온 디턴 교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웰빙 국가를 만들고 싶으면 국내총생산(GDP)에만 집중해선 안된다”는 조언도 내놨다. 그는 “웰빙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주 다양한데, 많은 부분이 경제성장과 관계가 없다”면서 “자동차 계기판처럼 다양한 지표를 한꺼번에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많은 국가들이 GDP를 기준으로 잘사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나눈다. GDP가 웰빙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GDP는 웰빙에 있어서는 최악의 지표다. 웰빙을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계기판 같은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웰빙의 구성요소는 엄청나게 많은데, 예컨대 속도뿐만이 아니라 기름량, 온도 등 여러 가지를 운전자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 한국이 불평등이 감소한 진짜 웰빙 국가가 되려면 어떤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고 보는가.


“불평등이 줄어들면, 웰빙의 조건은 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웰빙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아니다. 웰빙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주 다양한데, 많은 부분은 경제성장과 연관이 없다. 오히려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같은 기대수명,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잘 갖춰진 수준있는 사회인지, 또는 내 자녀가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와 같은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진정 웰빙 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경제성장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같은 다른 요소들에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다른 강연에서 저성장이 부의 불평등을 가속화한다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저성장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높은 경제성장하에서는 모든 게 쉬워질 수 있다. 모두가 조금씩 다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이 없는 환경에서는 누군가가 얻게 되면 상대방은 그만큼 잃게 되는 구조, 즉 제로섬의 세계가 된다. 이것이 내가 강조하고자 했던 대목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힘들어진다.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정책 입안자는 없다. 이른바 세계정부가 있어야겠지만, 그렇진 못하다.”


- 세계화가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많은 이들은 경제적 불평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우리가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계화가 극빈층을 덜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세계화로 미국의 중산층이 피해를 입은 것은 맞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세계화가 이루어졌지만 미국 중산층만큼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바로 정책의 문제다. 핵심은 세계화가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정책이다.”


- 한국 자본주의는 많은 제도와 시스템을 미국으로부터 차용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문제는 한국이 미래에 겪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극소수의 부자들로 인해 양극화가 심각한데, 미국식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없는가.


“나는 슈퍼 부자들이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대목은 슈퍼 부자들이 정치를 좌우하거나 보통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더 큰 부를 쌓기 시작할 때다. 내가 보기에 미국에서는 일부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모든 국가들은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 저서 <위대한 탈출>이 한국에 처음 출판됐을 때 일부에서는 당신이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하고, 피케티의 견해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혼란이 있었지만, 책에는 분명하게 나와있다. 나는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언급했던 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경제성장이 일어나면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부자가 되고, 그것이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경제성장의 대가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이른바 평등만을 추구하는 사냥꾼 부족 같은 사회에서 산다면, 성장 또한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불평등과 성장 사이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오랫동안 피케티와 유사한 생각을 해왔는데, 어떤 이들이 매우 부유해지고, 그들이 국가를 장악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나는 빈곤이라는 문제로 접근했다.”(전문은 경향닷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담 | 박종성 논설위원


프린스턴(미국) |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앵거스 디턴은…불평등 문제에 집중,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소득이 증가하면 정말로 가계가 소비를 늘릴까. 1976년 노벨상을 수상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소득 가설’이 현실에서는 잘 맞지 않다고 입증한 인물이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73)다. 바로 ‘디턴의 역설’이다.  

 

이후 디턴은 소비자 행동은 물론 빈곤, 경제개발, 복지 등을 연구해왔다. 그는 개인의 선택과 소득 총액을 연결시켜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2015)을 받았다. 대표 저서는 <경제학과 소비자 행동>(1980), <위대한 탈출: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2013)이다.
 
불평등 분야의 석학으로 불리는 디턴은 불평등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불평등은 성장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며, 인류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 살기 좋은 시대가 됐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한다. 대신 디턴은 기회 불평등, 불공정 문제 등에 주목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 매체 기고문에서 “혁신과 기술발전 등을 통해 발생하는 불평등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지난 반세기 동안 중위(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임금이 정체되는 반면 상류층 소득은 급등하는 현상을 기술발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디턴은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선 “고졸 이하인 국민과 대졸 이상 국민으로 된 마치 두 개의 미국이 있는 것 같다”며 “미국 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이는 자본주의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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